광종 왕권 강화 통치 ‘짐작’
고려 초기 확실한 편년자료
통일신라 범종 비해 작아져
몸 옆으로 누인 비행비천상
지난 호까지 국내와 일본에 있는 통일신라 종을 포함한 10점에 대한 소개를 마쳤고 이번 호부터는 고려시대 범종을 연재하고자 한다.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남아있는 것이 고려시대의 범종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 범종은 총 41점에 달하며 가깝게는 규슈(九州)의 후쿠오카시(福岡市)로부터 멀리 니가타켄(新瀉縣)이나 이와테(岩盛手)의 모리오카시(岡縣市)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고려 10세기의 범종이 확인되는 점은 고려 범종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아울러 최근까지 고려 종으로 알려져 왔던 고려 초기 종 몇 점은 일본에서 제작된 한국 범종을 따른 일본 범종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본 소재 고려 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이 히로시마켄(廣島縣) 다케하라시(竹原市)의 죠우렌지(照蓮寺)에 소장된 준풍4년명(峻豊4年銘, 963) 범종이다.
이 종은 한국 범종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로 넘어오면서 어떠한 양상으로 바뀌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고려시대 초기의 가장 확실한 편년자료로서 그 가치가 크다.
우선 종은 통일신라 종에 비해 확실히 작아져 전고가 60.7cm에 불과하다. 용뉴는 천판(天板)에서 약간 떨어져 보주(寶珠)로 연결된 모습도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 새로운 특징이다.
천판 외연에는 통일신라 종에서 거의 등장되지 않던 연판문대(蓮瓣文帶)가 장식되어 있으며 상하대(上下帶)에는 새로운 형태의 반원권(半圓圈)의 능형문(稜形文)을 시문하였고 동일한 형식의 능형문을 당좌에도 사용하였음이 주목된다.
종신의 중단까지 내려와 넓게 자리 잡은 연곽대에는 당초문을 시문하였고 연곽(蓮廓) 내부에는 높게 돌기된 연뢰가 아니라 화문좌(花文座)위에 얕게 솟아있는 약화된 형태의 연뢰를 9개씩 배치했다.
특히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 여백에는 고사리 형태의 도식적인 구름무늬 위로 몸을 옆으로 뉘인 채 비행(飛行)하는 모습의 비천상을 부조하였는데, 이 종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고려 비행비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장된 삼산관(三山冠) 아래에 표현된 둥근 얼굴, 약화된 하반신과 신체의 부자연스러움, 가늘고 힘이 빠진 도식적인 세선(細線)의 천의는 통일신라 종의 주악비천상에 보였던 유려하면서도 사실적인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종에 새겨진 주종기는 종신의 한쪽 연곽과 당좌 사이에 꽉 찰 만큼 크게 별도의 방형곽(方形廓)을 두어 비교적 긴 내용을 양각으로 새겼다. ‘벌, 소대왕당현총규사간, 준풍사년계해구월십팔일고미현, 서원주종기, 도인명소동원주, 인령 현화상신엄, 장노효현상좌, 흔직경예언경, 대백사, 나주지말백사 (伐, 昭大王當縣聰規沙干, 峻豊四年癸亥九月十八日古최縣, 西院鑄鍾記, 徒人名同院主, 人領 玄和尙信嚴,長老曉玄上坐, 欣直卿乂言卿, 大百士, 羅州只末百士)’란 양각의 주종기(鑄鐘記)를 새겼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첫행의 벌소대왕(伐昭大王)은 고려 4대 광종(光宗)을 뜻하며 '총규사간(聰規沙干)'은 당시의 인명과 관직명으로 보인다. 그 다음 행의 '준풍4년(峻豊四年)'의 준풍(峻豊)은 고려 광종 때 4년 정도 사용된 고려의 연호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 4년 계해(癸亥)는 963년에 해당된다. 이처럼 명문에 중국 송나라의 연호인 건륭(建隆)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건(建)'자와 ‘륭(隆)'자가 각각 고려 태조(太祖)와 부친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위해 쓰인 위피 연호(謂避 年號)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위피 연호가 사용된 예로 금나라의 연호인 정륭년간(正隆年間, 1156~1161)의 정륭(正隆)을 의도적으로 정풍(正豊)으로 바꾸어 쓴 예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고려 왕의 이름인 륭(隆)과 한자가 같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풍(豊)으로 바꾸어 쓴 것이란 고려 종의 명문을 소개한 단편적 글이 확인된다. (鄭永鎬,「正豊二年銘小鐘(朴秉來氏藏)」,<考古美術>16호, 1961)
그러나 이 종이 만들어졌던 963년 경은 광종의 강력한 통치에 따른 왕권 강화 시기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고려의 연호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렇게 볼 때 한국 종 가운데 자국의 연호가 사용된 유일한 예로 주목된다.
963년 9월18일 고미현 서원이란 사용처 가운데 지역명인 ‘고미현(古彌縣)'은 지금의 전남 영암군(靈巖郡)에 해당되는 곤미현(昆湄縣)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뒤에 나주(羅州)라는 지명이 나오는 점에서도 이를 뒷받침 한다. 즉 고미현의 서원(西院)에서 사용하고자 만들어진 것으로서 당시에 영현화상(領玄和尙) 신엄信嚴), 장노 효현상좌(曉玄上坐), 흔직경 예언경(欣直卿乂言卿) 등과 같은 스님과 지역 향리가 함께 발원한 내용을 알 수 있다.
특히 통일신라에 사용되었던 대백사(大百士)란 장인의 호칭이 아직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어 나주(羅州)의 지말(只末)이라는 장인이 제작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 범종의 제작 장인의 이름이 등장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통일신라 후기까지 꾸준히 계승된 주악천인상에서 이제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몸을 옆으로 뉘어 나는 새로운 형식의 비천상으로 바뀐 점을 이 종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비행비천상(飛行飛天像)은 1058년에 제작된 청녕4년명 범종의 불보상과 또 다른 고려 종의 한 장식 요소로서 고려 범종 부조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형태이다. 이후 비행비천의 자세는 시대가 내려가면서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연꽃가지를 지물(持物)로 든 모습으로 변화를 이루며 꾸준히 계승을 이루게 된다.
이 범종은 쇠잔해진 통일신라 범종의 여운을 반영하듯 주조기술의 투박함이 여실히 느껴지지만 고려의 안정된 국력을 바탕으로 활력을 되찾아 새로운 고려 종으로 자리잡은 첫 번째 편년 작품이다. 이후 고려 범종으로 완성을 이루는 천흥사종(天興寺鐘, 1010)으로 계승될 수 있었던 가교적 역할의 범종이란 점에 그 중요성이 크다. 총고 60.7cm이며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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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음(餘音) 히로시만현 죠우렌지(照蓮寺)는 교통도 불편하고 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작은 사찰이었다. 종을 조사할 당시 직접 역까지 마중 나온 스님의 차를 타고 절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당시 새로이 보관용으로 제작된 무거운 유리장이 덮여있어 종 사진을 찍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주지 스님이 직접 사람들을 불러 유리장을 다시 해체한 뒤 사진을 찍게 해준 배려에 실로 몇 번이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조사를 마치고 역까지 다시 데려다 주시면서 맛있는 소바까지 사주신 주지 스님의 친절에 돌아가는 발길이 너무 가벼웠던 기억이 새롭다. 비록 고국을 떠나 타국에 떨어진 고려 범종이지만 이처럼 소중히 다루고 적극적으로 공개해 주는 소장처나 관리인이 있다면 당장은 아쉽지만 그곳에서나마 한국 종의 우수성을 알리는 충실한 외교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외 소재 문화재의 활용 방안도 이제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
[불교신문3311호/2017년7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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