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회의 정치와 사회
교리 아는 중요한 금석문
어린아이 인신공양 설화
종교폄훼 의도 가진 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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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국립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과 종각. |
성덕대왕신종의 공양자상은 그 배치에 있어서도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종신의 앞, 뒷면에 새겨진 양각 명문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2구씩 마치 명문을 향해 간절히 염원하는 모습으로 4구의 공양자상을 배치하고 있는 점도 이 종의 중심이 다른 종과 달리 기록된 명문임을 시사해 준다. 아울러 종구 부분을 8번의 유연한 굴곡(八稜形)을 이루도록 변화를 준 점도 다른 종에서 볼 수 없는 양식적 특징이다.
이에 따라 그 위에 장식되는 하대 부분도 8릉의 굴곡을 이루게 되고 굴곡을 이루는 골마다 마치 당좌의 모습과 같은 원형의 연화문을 8곳에 새겼으며 그 사이를 유려한 모습의 굴곡진 연화 당초문으로 연결시켜 한층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당좌는 그 주위를 원형 테두리 없이 8엽으로 구성된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는데, 타종으로 인해 문양이 많이 마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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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성덕대왕신종 명문과 공양좌상 배치. |
종신 앞, 뒷면의 가장 중심 공간에 배치된 양각의 명문은 앞과 뒤의 내용을 구분하여 ‘서(序)’와 ‘명(銘)’을 배치하였는데 1000여자에 이르는 장문으로 당시 신라 사회의 정치 상황. 불교 교리 및 사회 제반 사항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이기도 하다.
서문의 내용은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단락은 신종을 높이 달아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게 하였다는 내용으로서 종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불교의 내용을 들어 역설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원음(圓音)이란 바로 부처의 설법을 원음(圓音), 일음(一音), 다음(多音) 등으로 구별해서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는 일승(一乘)을 설하실 때의 설법음을 바로 원음(圓音)이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이 내용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회통(會通)하는 부처의 설법을 신종의 소리를 통해 깨닫게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점에서 자못 의미 깊다.
둘째 단락은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고 그러한 공덕을 종에 담아서 그 공덕을 영원히 기릴 뿐만 아니라, 종소리와 더불어 나라가 평안하고 민중들이 복락을 누리기를 바라는 발원을 담았다.
셋째 단락은 그러한 국가적인 큰 주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성덕왕 아들인 경덕왕의 효성과 덕을 찬양한 부분이다. 넷째 단락은 결국 종의 주조를 다 마치지 못하고 경덕왕이 돌아가자 그 아들인 혜공왕이 이 사업을 이어서 완성하였는데, 이것은 혜공왕의 효성과 덕망의 소치라고 찬양한 부분이다.
다섯째 단락은 종이 완성되자 이에 대한 감격과 신비로움, 그리고 종을 치는 목적과 의미를 서술하여 ‘모양을 보는 자는 모두 신기하다 칭찬하고 소리를 듣는 이는 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마지막 단락이야말로 극락세계는 물론이고 지옥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신종을 치고자 한 가장 궁극적인 조성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대쪽의 명은 서문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4자구(四字句)로 시적(詩的)인 맛을 살려 찬양과 발원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당시에 이 글을 지은 사람은 한림랑(翰林朗) 급찬이었던 김필오(金弼奧)이며 종 제작에 참여한 많은 인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종대박사(鑄鍾大博士)인 대나마(大奈麻) 박종익(朴從鎰)과 차박사(次博士) 박빈나, 박한미, 박부악(朴賓奈, 朴韓味, 朴負岳) 등이다. 여기에 기록된 고위 관직의 인물들은 당시에 이 종이 국가적인 대역사로 이루어진 점을 잘 말해준다. 여기에 당시로서도 엄청난 양에 해당되는 구리 12만근이 소요된 점을 밝히고 있는데, 실제 달아본 종의 무게만도 18.9톤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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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종에 얽힌 에밀레종의 설화는 종을 만들 때 시주를 모으는 일반적인 모연(募緣) 설화와 달리 인신공양(人身供養)의 내용인 점에 주목된다. 어린아이를 넣어 종을 완성함으로써 종소리가 어미를 부르는 것 같다는 다소 애절하기까지 한 설화의 내면에는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와 어려움이 따랐는가를 은유적으로 대변해 준다.
그러나 실제로 범종을 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지옥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까지 제도하는 자비심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범종을 완성하고자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공양하였다는 내용 자체가 조성 목적에 전혀 맞지 않아 더욱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성덕대왕 신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상원사종과 유사한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었으며 미량의 납과 아연,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황, 철, 니켈 등이 함유되어 있었지만.
결국 세간에 떠도는 바와 같은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인체의 성분이 70%이상 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주조 당시에 사람을 공양하여 쇳물에 넣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종이 깨져 완성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과학적으로도 에밀레종의 유아희생 설화는 전혀 근거가 없는 전설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전설이 언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자료도 분명치 않다.
우리나라 범종의 최대 걸작인 성덕대왕 신종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그것이 비록 전설이나 설화이던 간에 어디에서라도 남아있어야 할 것인데 그러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한다. 아마도 조선 후기쯤 유림의 세력이 드높았던 경주 지역에서 불교의 인신공양을 범종에 결부시켜 종교적 폄훼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본다.
분명한 것은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이 종의 이름을 명문 첫머리에 두어 일반적인 종과 달리 그야말로 가장 신성스런 종이란 점을 처음부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된 명문에서 보이듯 일승의 원만한 소리인 부처의 말씀과 같은 종소리를 들음으로써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범종의 참 뜻을 성덕대왕 신종은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어엿한 본명 대신 전혀 근거도 없고 왜곡된 별칭인 에밀레종으로 부르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범종은 비록 혜공왕대인 771년에 완성되었지만 통일신라 불교미술에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현하였던 8세기 경덕왕대(景德王代, 742 ˜765)에 제작되기 시작한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들었던 당대 최고의 과학, 건축, 조각술이 주조기술과 합쳐져 총체적인 완성을 이루게 된 것이 바로 성덕대왕 신종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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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인왕동 박물관으로 종을 옮겨 달 때 옛 철고리를 다시 바꿔 달려고 당시 가장 유명한 포항제철에 의뢰해 고리를 특별히 주문 제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종을 직접 달기 전 실험을 해본 결과 고리의 직경이 중량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원래의 고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는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금속 주조 기술을 지니고 있었는지 여실히 증명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높이 3.66m, 구경이 2.27m에 이르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큰 크기이면서 신비한 소리와 아름다운 형태를 함께 간직한 성덕대왕 신종은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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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음(餘音) 성덕대왕 신종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근거도 없는 제야의 종이란 명목으로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타종되었다. 함께 치기 시작한 보신각종은 결국 균열이 생겨 새로운 복제 종으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성덕대왕 신종 역시 제아무리 통일신라의 완벽한 주조기술로 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 수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종을 중단한 것인데, 아직도 성덕대왕 신종의 타종을 주장하는 의견이 많다. 다행히 2016년 11월 경주시에서 성덕대왕 신종을 완벽히 재현한 신라 대종을 주조하여 타종하기 시작하였다. 천만 다행한 일로서 이 종을 주조한 성종사 및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
[불교신문3280호/2017년3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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