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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불사 '명상상담센터 쉼'에서는 개인은 물론 부부, 청소년상담에서 상담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자격증반 등 다양한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오스님이 진행한 '명상과 함께 하는 감정조절 프로그램' 모습.

이즈음, 남도는 꽃으로 물든다. 산수유, 매화에 이어 벚꽃이 만개하더니 그마저 봄바람에 끝물이 되었다. 이제는 하얀 배꽃과 붉은 복숭아꽃이 제철이다. 한반도 서남쪽 끄트머리 무안 봉불사(주지 지오스님)를 향하는 길이 그러하다.
화창한 봄 날, 꽃길을 가는데 처음 봉불사를 찾았던 날이 생각났다. 2009년이었다. 무안출신 국회의원이 지역구 공식행사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종교편향이었다. 지역적으로 불교세가 약하다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봉불사가 들썩였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종교편향을 일삼는 국회의원 규탄법회가 열렸다. 봉불사는 광주에서도 한참을 가는 시골의 작은 사찰이다. 100여 명의 불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국회의원의 사과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가 잊히지 않는다.

봉불사 주지 지오스님은 10여 년간 명상상담가로 활동하면서 쓴 글을 모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라는 책을 펴냈다. 명상상담은 지오스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봉불사 경내에는 요사채를 겸한 무위당에 ‘명상상담센터 쉼’이란 현판이 달려있다. 지치고 고통받는 이들의 쉼터라는 안내판이다. 지하 교육관에서는 명상상담지도자 자격증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대학에서 상담관련 강의를 하는 교수님과 대학생, 현직에서 상담을 하는 상담사들이다. 스님 옆에 수녀님도 눈에 띈다. 

‘화는 참으면 병이 되고, 화를 내면 죄가 되고, 화를 알아차리면 소멸됩니다.’
봉불사 명상상담센터 ‘쉼’에서 진행하는 상담은 곧 수행이다. 명상상담을 통해 ‘알아차림’을 통찰하고, 사라지는 고통을 바라본다. 명상상담센터에서는 개인은 물론 부부, 청소년상담에서 상담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자격증반 등 다양한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전남교육청으로부터 학교폭력예방 및 치유를 위한 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땅끝 시골에 작은 사찰이건만 봉불사는 전국에서 스님과 상담사,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사실 봉불사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어느 스님의 기도처로 시작했다. 스님이 입적하고 두 비구니 스님이 찾아오면서 오늘의 봉불사가 움트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전국의 선방을 찾아 정진하던 지오스님과 성원스님이 우연히 봉불사와 인연을 맺었다. 두 스님은 지리산 대원사로 출가한 사형사제간이다. 시골사찰이 비었으니 잠시 맡아달라는 지인의 요청이었다. 마침 동안거를 나기위해 선방을 찾던 두 스님이 안거에 들기 위해 봉불사를 찾았다. 그리고 24년째 해제 없이 여전히 안거중이다.
주지는 사형 지오스님이다. 정열적이다.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어 붙인다.
사제 성원스님은 총무이다. 대중들을 다독이며 사중의 살림살이를 조곤조곤 해낸다.
“막상 시골 절에 살다보니 개인수행보다 지역포교가 먼저였습니다. 신도가 없는 것입니다.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신도를 찾아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주지 지오스님은 열악한 지역불교의 현실에 마음 아팠다고 회고한다. 신도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을 찾았다. 신도 집에서 <천수경>을 독송하고 가족편안을 기원하는 축원을 올렸다. 한 달 후에 다시 마을을 찾으면 스님의 소매를 잡고 자기 집으로 이끄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찾은 마을이 15개가량 된다. 
몇 해가 지나고 마을법회는 자연히 사찰로 옮겨졌다. 서서히 기도중심에서 법회중심으로 신행형태를 바꾸어 나갔다. 
법회에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대상은 어린이, 청소년이다. 어린이법회를 열자 젊은 부모들도 사찰로 모였다. 방학 때면 불교학교가 열리고, 사찰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그렇다고 농촌에 자리한 봉불사에서 어르신 포교는 빼놓을 수 없다. 무안군에서 위탁하는 ‘은빛교실’을 운영키로 했다.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차원으로 운영하는 은빛교실은 무안군 관내에만 20여 개에 이른다. 대부분 교회에서 운영하고 불교는 봉불사가 유일하다. 봉불사 은빛교실은 2006년부터 해마다 5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아쉽게도 사중사정이 여의치 못해 올해는 휴교했다. 

‘명상상담센터 쉼’ 개원하고
개인 부부 청소년상담 비롯
지도자 자격증과정 등 운영
“명상은 예방, 상담은 치유
알아차리면 고통 곧 소멸돼”

은빛교실을 총괄하던 총무 성원스님은 어느 할머니를 잊지 못한다. 한글교실을 마치고 나오자 할머니 한 분이 스님 손을 잡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날 농협에 갔다가 처음으로 통장에서 돈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기 이름을 쓸 줄 몰라 자식들이 보내온 용돈을 직접 찾지 못했던 것이다. 
봉불사는 2008년 또 하나의 변곡점을 맞았다. 지오스님이 행자도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교 상담을 알게 된 것이다. “저는 상담을 하라고 하면 잘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도반스님이 서울에서 인경스님이 지도하는 불교상담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오스님은 출가 전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서울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던 지오스님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계속된 우울증에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느 해 여름, 사표를 써서 사무실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휴가를 떠났다. 사실은 출가였다. 출가생활도 적응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휴가'인 척 길을 나섰다. 그렇게해서 도착한 곳이 지리산 대원사였다. 그런데 행자생활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휴가는 출가가 되었다. 
승가대학을 마치고 운수납자가 돼 선방을 찾아다니며 정진했다. 우연히 시골사찰에 머물며 지역포교도 혼신을 다했다. 그리고 만난 ‘불교 상담’은 마치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와 밝은 빛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명상상담을 진행한 참가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상담이 계속되면서 지오스님은 자신이 더 많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은 ‘나’였다. 상담을 하면서 ‘알아차림’을 하고보니 나와 너가 아닌 ‘공감’이었다. 
“상담을 하다보면 있는 그대로 봐주는 힘이 생깁니다. 상대방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도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자비심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지오스님이 말하는 ‘명상상담’은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명상이 예방이라면 상담은 치유다. 생활 속에서 대화만 잘해도 부부문제, 청소년문제 등 현대인이 겪는 문제의 대부분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봉불사의 미래는 명상상담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발원하는 도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수행자, 명상상담 통해 중생들 아픔 보듬어줘야” 
봉불사 주지 지오스님

“부처님은 참으로 위대한 상담가였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셨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충분히 들어주고 스스로 통찰해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명상상담을 통해 중생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는 지오스님은 “스님들을 교육하는 승가대학에서 상담과정을 정규 과목으로 정해 수행자이자 상담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가대학 교과개편이 진행되면서 출가자로서 전법교화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도, 포교현장에서 신도들을 만날 때 가장 필요한 상담 관련 교과가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스님은 생활이 편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족할수록 마음의 고통이 커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인천(人天)의 스승인 스님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위해 스님은 상담능력을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지오스님은 “상담이야말로 훌륭한 수행이다”고 덧붙인다. 스님은 선원에서 면벽참선으로 ‘집중’의 경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더 깊은 통찰은 명상을 통해서였다. 
예전에는 신도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그래서 안돼…’라며 판단하곤 했다. 가르치려는 마음이 앞선 것이다. 상담훈련을 통해 상대방과 공감하고, ‘알아차림’이라는 통찰을 하게 됐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곧장 병원에 가면서 마음이 아프면 그냥 내버려둡니다. 상담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힘들면 상담해 보세요.” 
봉불사 명상상담센터 ‘쉼’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기 있는 과정은 매월 셋째 주말에 진행하는 명상상담지도자 자격증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전국 각 사암의 스님은 물론 수녀, 상담전공한 대학생, 요양원 상담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 봉불사에서는 매월 넷째주 토, 일요일에 교사직무 연수과정과, 여름 겨울방학 때 청소년 명상캠프를 열고, 성인집중명상캠프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maha0703@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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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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