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언어도단이면 경전은 왜 있나 |
문 :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한 것이 경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선사들은 깨달음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라 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경전이 엉터리라는 뜻인지요? 경전은 ‘멋진 삶’을 위한 지침서 그 자체가 ‘멋진 삶’ 주진 않아
언어도단이란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는 말인데, 이것은 언어의 방법만으로는 실체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경전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긴 하지만, 그 경전을 통해 마치 지어진 밥을 주듯이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밥을 직접 줄 수는 없지만 쌀로 밥을 지어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가르쳐 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벼농사 짓는 법에서부터 밥을 지어 먹는 것까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그 얘기를 되풀이해 들어도 말로 설명되는 밥이 입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어의 밥’일 뿐이기 때문이며, 아무리 밥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배는 계속 고플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설명을 들은 후에는 직접 쌀을 구해서 밥을 지어 먹어야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독창적으로 그렇게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님의 말씀을 오해한 사람들에게, 선사들은 부처님의 가르치신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지요. 경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모든 곳에서 부처님은 직접적인 체득을 강조하십니다. 오히려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을 경계하셨지요. 만약 경전에서 믿음을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면 우선 그 가르침을 믿고 실천해 보라는 뜻에서 강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직접 깨닫기 전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다시 또 괴로운 길로 가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삼독을 쉽게 설명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지혜롭지 못함은 독과 같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누구나 설명은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오래 수행을 한 이가 법문에서 청산유수같이 설명하던 때와는 달리, 권력과 명예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흔히 보게 됩니다. 닭 벼슬보다도 못하다는 자리를 두고 어지럽게 싸우기도 하고, 관속에 넣어 갈 수도 없는 명예를 얻으려는 몸부림에 일생의 공덕이 봄날에 지는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기도 합니다. 경전에서는 이미 이런 것들이 허깨비 같은 것이며 물거품 같은 것이므로, 여기에 끌려가서는 결코 해탈할 수 없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권세나 명예를 탐한 이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는 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우리는 현실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해탈이니 무애자재니 하는 경지가 언어도단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설명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이해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전이나 선지식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불교신문 2463호/ 10월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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