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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극락에 도달한 듯 극적 묘사

아미타불 주재하는 서방정토
감동적으로 그린 18세기 불화

구품연못서 화생하는 왕생자
용선 탄 이들 맞는 아미타삼존
한 화면에 집약, 구성 돋보여

불화는 다른 장르의 불교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전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일대기인 팔상(八相), 불교의 이상향인 정토세계, 윤회의 굴레인 육도(六道)의 의미와 내용도 그림을 통해 어느 정도 묘사할 수 있다. 이렇듯 불화는 ‘예배’ 외에 ‘경전의 도설(圖說)’이라는 기능까지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는 ‘염불수행을 통한 극락왕생의 염원’을 구체적이면서도 장대하게 그린 독보적인 정토계 불화이다.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은해사(銀海寺)는 경상북도의 명산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미타도량이다. 조계종 제10교구본사로, 8곳의 산내 암자와 50여 곳의 말사를 거느린 거찰이기도 하다. 신라 때 혜철국사가 개산한 후 해안사(海眼寺)로 불리다가 조선 16세기에 천교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사명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은해사는 유구한 역사 만큼이나 귀중한 유물이 무수히 많은데, 그중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한 점 포함되어 있다. ‘염불왕생첩경도’라고 불리는 조선 18세기 불화이다. 

극락, 불자라면 누구나 가기를 염원하는 이상세계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인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극락은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의 정토로 일체의 고통이 없고 칠보의 나무, 칠보의 연못, 칠보의 누각, 칠보의 연화, 황금의 대지,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극락조가 노닌다고 한다.

또한 극락에 왕생하려면 무수한 염불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염불(念佛)이란 부처님 상호(相好)를 생각하여 관(觀)하거나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수행법이다.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이러한 염불 수행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결과 도달할 수 있는 극락의 모습을 우아한 필치로 담아냈다. 

이 불화는 세로 159.8cm, 가로 306.5cm의 비단 바탕에 그려져 있다. 붉은색과 녹청색을 위주로 하고 군청색 및 백색 그리고 금을 곁들여 그린 채색 불화이다. 필선은 섬세하면서도 힘이 있으며 존상들의 얼굴 이목구비와 표정에서부터 옷과 장엄물의 문양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들여 그린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 연대는 조선 1750년이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한 장면 옆에는 방제가 함께 쓰여 있어 세부적인 의미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화면의 상부에 위치한 장면 ①은 극락의 장엄이다. 아미타삼존, 즉 아미타여래와 좌우 협시인 관음·세지보살이 앉아 왕생자를 맞이하고 있으며(방제: 佛與菩薩接俱接念佛人) 그 주변으로 보배로운 나무(방제: 七重行樹潰陰垂布妙好無窮)와 칠보 누각(방제: 地上有七寶樓閣千層萬畳廣妙好), 기묘한 각종 극락조(방제: 種種奇妙雜色之鳥畫夜六時常說妙法)가 노닐고 있다. 또한 상품상생자를 데려오기 위한 금은 대좌를 주악 천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방제: 上品上生者所來金銀臺風樂侍衆). 
 

다음으로 화면의 하부 향 좌측에 배치된 장면 ②는 구품 연못이다. 칠보의 구품 연지(방제: 七寶池/ 八功德水流注葉間演說妙法百寶裝飾)에서 화생하는 왕생자들이 그려져 있다. 왕생자는 ‘상품상생’에서부터 ‘하품하생’에 이르기까지 제14 상배관 – 제15 중배관 – 제16 하배관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화면 향 우측 아래에 배치된 장면 ③은 용선접인(龍船接引)이다. 다수의 왕생자들을 태운 용선이 극락에 도달하는 모습이다. 배의 앞머리에는 관음보살이 번을 들고 인도하고 있고 뒤에서는 대세지보살이 삿대를 젓고 있다. 위에서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미타삼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방제: 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 용선에 타고 있는 70여 명의 왕생자들은 수행자에서부터 속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다양한데, 모두 고개를 들어 용선이 향하고 있는 극락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세부적인 내용은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화면 하부의 구품 왕생자와 반야용선은 화면 상부의 불·보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구품연지 왕생자는 난간 위에 앉아 있는 아미타삼존의 손에서 나오는 빛을 통해 극락으로 인도되고 있으며, 용선 왕생자들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영접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미타 정토계 불화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극락에서 부처님 설법을 그린 아미타설법도,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모습의 아미타래영도, 극락 관상법을 묘사한 관경변상도, 서방 극락세계를 다채롭게 장엄한 아미타정토도, 그리고 중생이 극락정토를 향해 반야의 지혜에 의지하여 용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린 용선접인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극락 관련 불화들을 보면 해당 주제를 각기 별도의 화폭에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극락의 모습, 구품 연화 화생, 그리고 반야용선을 한 화폭에 그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고려와 조선전기에 그려진 관경변상도는 관법의 도설 위주로 그려져 있으며 조선 후기 정토변상도 역시 극락의 장엄과 아미타여래의 설법, 그리고 구품의 묘사가 대부분이다. 또한 ‘아미타정토도’(조선 1582년, 일본 라이코지 소장)나 ‘관경변상도’(조선 16세기, 일본 호린지 소장)에서는 용선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전자는 극락의 장엄이 구체적이지 않으며 후자는 용선이 하단에 작게 그려져 있어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은해사의 ‘염불왕생첩경도’는 앞서 설명했듯이, 극락의 이상적인 모습 및 구품 연지에서의 화생 장면 등과 더불어 지금 막 극락에 도달한 듯한 용선의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 그림은 ‘염불왕생첩경도’라는 명칭 외에 연구자들에 따라 때론 관경변상도, 서방구품용선접인도, 극락구품도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 문화재청과 소장처인 은해사에서는 ‘염불왕생첩경도’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선 방제에서 찾을 수 있다.

방제 중에는 ‘念佛之人生蓮華池(염불인이 연화 연못에서 태어나다)’, ‘佛與菩薩接俱接念佛人(불보살이 염불인을 만나다)’, ‘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아미타불이 앞에서 염불 중생을 인도하다)’, ‘念佛之人龍船往生(염불인이 용선을 타고 와 왕생하다)’라고 쓰여 있는 구절들이 있다. ‘염불인’이라는 구절이 반복해서 쓰여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염불수행이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편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그림이 표방하고 있는 염불수행은 은해사의 당시 신앙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염불 신앙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경북의 팔공산과 그 인근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18세기 경북지역에서 간행된 정토계 불서 중에는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이 포함되어 있다. 염불보권문은 예천 용문사에서 1704년 간행되기 시작한 이후 수도사, 동화사 등에서도 개판했는데, 이 책에서는 염불의식과 진언, 게송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칭명염불을 통해 왕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동화사에서 간행한 <불설아미타경>(1753)에는 아미타경과 함께 염불과 관련된 ‘왕랑반혼전(王郎返魂傳)’과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이 합본되어 있는데, 간기를 보면 은해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팔공산과 그 인근 지역에서는 염불 신앙이 팽배해 있었고 그 결과 은해사에서는 ‘염불왕생첩경도’와 같은 그림을 제작, 봉안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30여 년 전 도난당했다가 2010년에 환수되어 보수를 거친 후 현재 사중의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현재 화기가 결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1990년에 발간된 문화재청 보고서에는 ‘건륭 15년’, 즉 1750년 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은해사에서는 1750년에 ‘염불왕생첩경도’ 외에 ‘아미타설법도’와 괘불도를 함께 제작했는데 이 그림들의 화풍과도 유사해 1750년 제작설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준다.

‘염불왕생첩경도’는 전체적인 구성과 구도, 세부표현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그림으로, 미타도량 은해사를 명실상부 대표할만한 정토계 불화라 할 수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보물 제1857호로 지정되었다. 

[불교신문3564호/2020년3월1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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