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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10세기, 돈황 17굴 출토, 영국 대영박물관 |
사후에 망자 ‘업’에 따라
심판하는 열 명의 재판관
中 10세기 시왕신앙 ‘형성’
지장보살시왕도 다수 조성
통일신라 초 명부신앙 수입
임란 후 명부전 대거 조성
최근 영화 <신과 함께 2>가 개봉되었다. 작년 말부터 돌풍을 일으킨 이 영화는 연일 기록적인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한국을 넘어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불교적 사후관에 동양 특유의 효사상을 추가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의 사찰 어느 곳을 가더라도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시왕과 사자, 판관, 지옥사자 등 많은 존상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각 존상들 뒤에는 지장보살도와 시왕도, 사자도 등 다양한 불화들이 걸려 있다. 명부전에 봉안된 상과 그림들은 모두 인간의 사후세계와 관련된 것들인데, 그중에서도 전각 좌우로 가득 늘어선 시왕과 시왕 뒤에 걸린 그림은 보기만 해도 섬뜩하여 이곳이 마치 지옥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생전의 죄업을 심판하는 10명의 왕에게 재판을 받고, 그 결과에 의해 하늘·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 등 육도(六道)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사후 심판사상은 이집트, 페르시아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불교의 사후신앙은 인도 브라만교에서 영향을 받았다. 브라만교에서는 생명을 가진 것들은 생전의 업력(業力)에 의하여 사후 어디엔가 태어나 전생하는데, 현재의 상태는 바로 과거에 이룬 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죽음과 함께 육체는 소멸되지만 생전에 행한 업(Karma, 行爲)은 소멸되지 않으며, 이 업이 선업(善業)인가 악업(惡業)인가에 의해 육도 중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선업선인, 악업악인이라는 업과 응보의 사상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고대 인도사상의 근거를 형성하였으며, 이것이 곧 사후에 망자를 심판하여 육도로 전생케 하는 열 명의 재판관, 즉 시왕을 탄생시켰다.
시왕은 한자의 뜻 만 본다면 ‘10명의 왕’이라는 단순한 뜻에 지나지 않지만, 불교 에서는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10명의 대왕, 즉 진광왕·초강왕·송제왕·오관왕·염라대왕·변성왕·태산왕·평등왕·도시왕·오도전륜대왕을 말한다.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 의하면 망자는 사후 명부로 가는 도중에 초칠일(初七日)에는 진광왕, 이칠일(二七日)에는 초강왕, 삼칠일(三七日)에는 송제왕, 사칠일(四七日)에는 오관왕, 오칠일(五七日)에는 염라왕, 육칠일(六七日)에는 변성왕, 칠칠일(七七日)에는 태산왕, 100일째는 평등왕, 1년째는 도시왕, 3년째는 오도전륜왕 등 차례로 10명의 왕 앞을 지나면서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10세기경 <예수시왕생칠경>이 편찬되면서 시왕에 대한 신앙이 구체화되었으며, 시왕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변상도(變相圖)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둔황 석굴에서 발견된 변상도들은 종이바탕에 담채로 그려졌는데, 시왕이 각각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옆에는 2인의 동자가 시립하고 있으며, 목에 칼을 찬 죄인들과 옥졸, 사자, 판관 등이 그려져 있다. 이를 보면 초기의 시왕도 역시 기본적인 형식은 후대와 거의 다를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시왕 신앙은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과 결합하여, 시왕과 지장보살이 함께 묘사된 지장시왕도가 다수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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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왕도, 조선 16세기, 일본 호쇼지 소장 |
현재 중국에는 둔황 석굴의 17굴에서 발견된 지장시왕도가 여러 점 남아 있으며, 특히 남송대∼원 초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경원부(慶元府, 현재 寧波市)를 중심으로 시왕도를 제작,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시왕도는 육신충(陸信忠), 육사랑(陸士郞), 김처사(金處士) 등 경원부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그렸는데, 상단에 시왕이 판관과 사자 등을 거느리고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 하단에 망자가 지옥에서 벌을 받는 모습을 간단하게 그린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시왕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에 명부 신앙이 소개되었으며, 고려 초에는 개성에 시왕사(十王寺)라는 사찰이 창건되었으며, 흥복사에는 시왕당(十王堂)이 건립될 정도로 시왕 신앙이 성행하였다. 이를 보여주듯 동국대학교박물관에는 금동시왕상(金銅十王像)이 남아 있으며, 해인사에는 <예수시왕생칠경>의 목판변상도 2종류가 전하고 있다. 변상도는 오른쪽에는 경전 중의 각왕의 찬문(贊文)을 적고 바로 이어 지옥에서의 시왕들의 심판광경을 묘사하였는데, 탁자를 앞에 두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시왕 옆에 동자․판관․옥졸․공양자 등이 시립해 있고 아래에 죄인들이 재판받는 장면은 돈황 발견 <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와 비슷하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함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치르면서 현세에 대한 불안감과 고통스러운 현실생활에서의 도피욕구 등이 지옥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바램으로 이어지면서 기복과 영가천도(靈駕薦度)를 위한 도량인 명부전이 대거 조성되었다. 생전에 미리 추선공양(追善供養)하고 재를 올려 복을 닦음으로써 사후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면하고자 하는 바램은 곧 명부의 구주인 지장보살과 시왕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졌고, 명부전 안에 지장보살과 시왕이 함께 봉안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왕도가 조성되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시왕도의 도상은 거의 일률적이다. 즉 상단에는 책상 앞에 앉은 시왕이 판관, 사자, 동자 등을 거느리고 망자를 심판하는 광경이, 하단에는 망자가 벌을 받는 지옥의 광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지옥 장면은 시대와 지역 등에 따라 다르지만, 망자를 목판 위에 눕히고 몸에 못을 박거나(제1대왕도) 나무판에 죄인을 묶고 뱃속에서 오장육부를 끄집어내기도 하고(제2대왕도), 혀를 빼내 그 위에서 소가 쟁기질하게 하고(제3대왕도) 창으로 꿰어 펄펄 끓는 솥에 집어넣기도 한다(제4대왕도). 또 머리채를 잡고 업경(業鏡)을 바라보게 하고(제5대왕도), 날카로운 칼이 꽂힌 숲에 던지거나(제6대왕도) 형틀에 묶어놓고 톱으로 몸을 자르고(제7대왕도), 철산(鐵山) 사이에 끼워 놓고 압사시키고(제8대왕도), 차가운 얼음산(제9대왕도) 또는 깜깜한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가두기도 한다(제10대왕도).
즉 시왕도에는 벌을 받는 망자들이 기름이 펄펄 끓는 확탕지옥, 날카로운 칼숲으로 된 도산지옥, 톱으로 몸이 잘리는 고통을 받는 거해지옥, 커다란 바위 밑에 깔리는 벌을 받는 대애지옥 등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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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사 시왕도(제10대왕), 1742년, 경남 고성 옥천사 소장 |
지옥장면은 비단 시왕도에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인종의 후궁인 숙빈 윤씨가 명종비 인순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해서 자수궁정사에 봉안했다는 지장보살변상도(1575~1577)에는 18지옥의 장면이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확탕지옥(鑊湯地獄)에서는 화갱지옥(火坑地獄)과 정신지옥(釘身地獄), 철거지옥(鐵車地獄), 박피지옥(剝皮地獄)은 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된다.
이 불화 속 지옥장면을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분들이 속세의 인연을 벗어나 도솔천으로 올라 극락계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숙빈 윤씨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지옥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느끼게 될까? 현세에서의 죄에 따라 사후 떨어지게 되는 여러 지옥의 장면들을 사실적이고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은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무서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죽어서 겪게 될 지옥의 고통을 상상하면서 공포감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종교에 귀의하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중국 당대의 화가 오도현(吳道玄)이 경공사에 그린 지옥그림을 보고 도살자, 어부들이 그 죄보를 두려워하여 전업하는 자가 있었다는 기록(<益州名畵錄>)은 바로 시왕도나 지옥그림이 단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적인 기능을 했음을 말해준다.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한 지옥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시왕도는 단지 무서움과 두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돌아가신 부모나 형제 등을 위한 추선불사(追善佛事)를 행하여 망자가 사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좀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자신 또한 생전에 미리 지옥의 시왕에게 재를 올려 사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 그것이 바로 시왕도를 조성한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불교신문3425호/2018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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