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에 적합한 장소가 따로 있는가? |
문 : 독경과 염불은 법당에서만 하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집에서 불상을 모시거나 독경하면 재앙이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절에 갈 형편이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신행(信行)을 하면 좋습니까? 신행은 삶 위한 숨쉬기와 같은 것 호흡에 때와 장소가 따로 있으랴 답 : 불교의 모든 신행은 깨닫기 위한 노력입니다. 일상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편안하고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떤 곳에서는 행복하고 어떤 곳에서는 불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신행에 때와 장소를 가린다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으로서 어떤 곳에서는 스승으로 보고 어떤 곳에서는 재앙을 내리는 대상으로 본다면 결코 바른 불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상을 모시는 것은 스승을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하기 위함이며, 또한 스승의 삶을 따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경지에 올라 어떤 곳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행(수행)할 수가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처럼 쉽게 몸가짐이 흐트러지기 쉽고 잡다한 방해조건이 많은 가정에서보다는 몸가짐을 조심해야하고 경건한 마음자세가 필수적이며 대체로 고요한 분위기인 법당이 기본적으로 좋은 환경이 될 것입니다. 신행은 숨쉬기와 같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지요. 그러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행(수행)을 해야 하겠지만, 공기가 탁한 곳에서보다는 맑은 숲속에서 숨 쉬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은 당연하고, 또 공기가 희박한 고산보다는 평지가 숨쉬기에 한결 수월하겠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집에 불상을 모신다거나 집에서 독경을 많이 하면 오히려 재앙이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이며, 오히려 신행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기위한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마치 공기가 다소 탁한 곳에서는 숨을 쉬지 말고 있다가 공기 좋은 숲에서만 숨을 쉬라는 것과 같이, 이치에 맞질 않는 억지입니다. 약간 탁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아주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없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숨을 쉬지 않아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비불교적인 헛소문에 흔들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지간히 교학을 연구했음에도 집에 불상을 모시고 예불하는 이가 드물고, 수십 년 신행을 한 이들도 집안의 큰일을 앞두고는 절에 가는 발길을 주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면 좋지 않다고 하더라’하는 막연한 낭설에 휘둘린 결과입니다. 그만큼 정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불상과 불경은 모두가 스스로를 살피는 거울입니다. 불상을 보면서 나도 부처님같이 깨달아야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며, 불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잠시도 쉴 수가 없는 중요한 공부입니다. 그러니 불상을 모시고 불경을 읽는 수행에 때와 장소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숨을 쉴 때 “특별한 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건강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특별히 좋은 공기를 마신다기보다는 노이로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행도 생각으로 분별하면 장애가 생기기 쉽습니다. 일상사처럼 신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35호/ 6월1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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