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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 소개할 두 점의 범종은 왕실의 권위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적 작품이라기보다 왕비와 같은 왕실 관련 여성들이 발원한 종이다. 그런 점에서 규모가 이전의 대형 종에 비해 축소되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 두 종은 종각과 같이 외부에 거는 목적이 아니라 실내 의식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이러한 왕실 발원 범종은 연맥이 끊긴다. 개인 발원의 범종이 주류를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거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수대비 인혜왕비 발원 조성
규모 작아져 실내의식용 추정
왕실발원 범종 마지막에 해당

저자세로 천판에 붙은 용뉴
원 양식 기본으로 명 양식 수용

성화5년수종사명종

성화오년수종사명종은 1469년 조성됐다. 높이 48.8㎝, 구경 37.3㎝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수종사종(水鍾寺鐘)은 명문에 의하면 수빈한씨(粹嬪韓氏)와 정업원(淨業院) 주지(住持) 이씨(李氏)의 시주로 주성했다. 성화(成化) 5년(1469) 7월에 원찰인 수종사(水鐘寺)에 시납한 종임을 알 수 있다. 시주자인 수빈한씨(1437~1504)는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懿敬世子)의 빈으로, 세조 1년(1455) 수빈에 봉해졌다. 이후 1469년 11월에 수빈의 소생이었던 자을산군(者乙山君)이 성종(成宗)에 즉위하게 되자 의경세자를 덕종(德宗)으로 추존(推尊)하면서, 수빈은 인수대비(仁粹王妃)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 종이 만들어진 것은 예종이 죽기 4달 전인 7월이다. 이때는 아직 수빈이라는 지위에 머물러 있던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수빈한씨와 함께 시주자로 참여한 정업원 주지 이씨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업원이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내불당 형식의 비구니 전용 사찰인 점에서 정업원 주지 이씨도 왕실 관계의 여성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낙산사종(落山寺鐘)과 봉선사종(奉先寺鐘)에 비해서 크기가 매우 작으면서 완전히 다른 양식적 특징을 보인 것은 처음부터 이 종을 제작한 장인이 대형 종을 제작하였던 관장이 참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전대의 전통형 종 모습을 많이 계승하였고 문양도 자유분방한 느낌이다. 

우선 용뉴는 현재 상단부 이상이 부러져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상이 전통형 종을 따르고 있는 점에서 단룡(單龍)과 음통을 갖추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더불어 조선 전기에서 볼 수 없는 천판 한쪽에 구멍이 뚫린 것은 바로 음통과 연결된 부분이었다고 추정된다.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종구(鐘口) 쪽으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지는 모습이다. 불룩 솟아오른 천판 바깥쪽으로 고려 후기의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 형식을 계승한 여의두(如意頭) 형태를 높게 돌출시켜 장식하였다. 이 아래에 바로 붙어 상대처럼 꾸며진 연판문대는 사각의 연판 안에 당초무늬를 첨가한 모습이다. 

종신의 상부에는 연곽과 연꽃봉우리가 생략된 대신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으로 보이는 굵은 글씨의 범자문을 양각 배치하였다. 이 아래의 종신 하부 쪽으로 마치 와당(瓦當)의 연판 무늬를 연상케 하는 두 줄의 원형 테두리 안에 작은 자방(子房)을 두고 그 주위에 8잎의 연화문를 장식한 당좌를 4곳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종구 부분에 하대를 만들어 그 안에 여러 겹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파도문대를 정연하게 시문하였다. 명문은 한쪽 당좌와 당좌 사이에 방형 구획처럼 자리 잡은 여백 면에 4행으로 새겼다. 입상연판문대와 연판문 상대, 하대와 당좌 등은 우리나라 전통형 종을 따르고 있지만 일반적인 전통형 종과 달리 연곽과 보살상이 생략된 점이 독특하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봉선사종과 낙산사종이 오히려 외래형인 중국 종의 모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교해보면, 수종사명종은 조선 전기의 정통14년명(正統14年銘, 1447)종과 같은 전통형 범종과 외래형 종이 적절히 혼합되어 이후 혼합형 범종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수종사에는 이 범종 외에도 팔각 오층석탑 안에서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한 불상들이 발견된 바 있어 당시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많은 불사(佛事) 이루어졌던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홍치4년 해인사종

보물 1253호. 해인사종이다. 높이 85cm, 구경 58cm로, 조선 1491년에 조성됐다. 현재 해인사에 있다.

조선 전기의 범종 가운데 외형의 장식이 가장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주조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밑으로 가면서 조금씩 벌어지다가 직선화된 원추 모양을 하였다. 두 마리의 쌍룡으로 이루어진 용뉴는 서로 몸을 얽혀 고리 부분을 만들고 양쪽에 머리를 돌려 천판에 맞댄 모습이다. 용뉴 아래로는 천판이 둥글게 솟아오르고 그 바깥을 돌아가며 폭이 넓은 연판문의 상대(上帶)를 배치하였다. 

종신은 중간을 세 줄의 띠로 나누어 위아래로 분류했다. 상부 종신에도 중간에 하나의 띠를 둘러 위쪽에는 방형의 연곽과 보살상을 번갈아가며 배치했고 그 아래쪽에는 굴곡진 모습의 유려한 연당초문을 부조하였다. 아래쪽 종신에는 두 줄의 띠로서 3구 구획하여 가장 위쪽에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며 여의주를 쫓는 웅혼한 모습의 용을 구름무늬와 함께 표현되었다. 그 아래 단에는 파도무늬를, 다시 하단에는 팔괘문(八卦文)을 둘러 종신 전체를 돌아가며 빈틈없이 문양을 새겼다. 

이와 같이 매우 복잡한 구성을 보이는 것은 이 종이 조선 왕실 발원 범종 가운데 명대 종 양식의 영향을 가장 뚜렷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쌍룡이 등을 맞대고 앉아 용뉴, 연판문대, 굵은 횡대 구획으로 종신을 세밀하게 분할한 점, 파도문과 팔괘(八卦), 여의주를 쟁취하는 쌍룡의 문양대 모습은 앞서의 종들과 달리 명대 성화년간(成化年間)에 만들어진 종과 매우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15세기 후반에는 당시 명대 종 양식이 보다 더 조선시대 범종에 영향을 주었음이 파악된다. 

해인사종에 새겨진 보살상.

특히 보살상의 모습은 마치 불화의 도상을 따른 듯이 늘씬한 신체에 얼굴은 매우 사실적이면서 양 어깨에 걸친 대의(大衣)와 다리 아래의 군의(裙衣)에는 화려한 영락이 장식되었다. 명문은 상부 쪽 종신에 연곽 아래마다 ‘홍치사년신해춘성해인사대적광전종(弘治四年辛亥春成海印寺大寂光殿鍾)’이라는 양각 명문을 4자씩 나누어 배치하고 있음이 독특하다. 이 종 역시 앞서의 수종사종을 시주하였던 인수대비와 예종(睿宗)의 계비인 인혜왕비(仁惠王妃)의 발원에 따라 대적광전(大寂光殿)과 기타 건물들을 대규모로 중수 중창하던 때인 홍치4년 성종 22년(1491) 봄에 해인사 대적광전 종으로 함께 주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왕실 발원 범종과 달리 종명과 조성감독, 장인들의 인명이 없이 조성연도와 종의 봉안처만을 간략히 새긴 점은 인수대비라는 왕실의 권력자에 의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종이 국가적인 사업이 아닌 개인적인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흥천사종으로부터 해인사종에 이르기까지 15세기 왕실 발원 범종의 용뉴 표현은 다양한 중국 종의 용뉴 중에서도 저자세로 천판에 붙은 모습의 용뉴를 채택했음이 확인된다. 또한 종신 중앙을 두른 횡대의 표현도 중국종의 요소이지만 불규칙적인 중국종의 횡대에 비해 왕실 발원 범종은 모두 조선의 규칙성을 지니고 있으며 가운데 선만이 유달리 굵게 표현되는 것이 차이점이다. 따라서 조선전기 왕실 발원 범종은 기본적인 형태에서 고려 말 연복사종과 같은 중국 원대 종 양식을 받아들였지만 새롭게 등장한 명대 종 양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실이 파악된다. 

이후 16세기에 제작된 범종에서는 왕실 발원 범종과 같은 권력층의 시주자와 자세한 발원의 내용을 담은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찰 관련의 범종을 제작하기 위해 사대부 보다 일반 대중들과 스님 신분의 시주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불교신문3403호/2018년6월2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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