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동삼층석탑 해체 복원 중 발견
외함.내함 각종 立像 정교한 기법 찬탄
부처님 등진 僧像 복원과정 오류인 듯
사리(舍利) 또는 ‘설리라(設利羅)’라고 하는 것은 범어 Sarira를 음역한 말로 부처님 신골(身骨)을 지칭하는 말이고, 사리구(舍利具)는 탑 속에 사리와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사리구에는 사리 장엄구, 공양소탑, 탑지(塔誌), 기타 공양물 등이 포함되는데, 특히 사리 장엄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직접 봉납하는 용기인 만큼 그 제작에 쏟는 불자들의 정성이 각별하다. 금.은.동.철.수정 등 귀하고 값진 재질로 만든 사리 장엄구에 베풀어진 여러 가지 장식은 석존에 대한 가없는 숭모의 정과 존경심의 발로이다. 어떤 사리 장엄구도 예외일 수는 없겠으나 감은사지 동탑의 사리 장엄구는 현존 유물 중 가장 장엄하고 화려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진흥왕 10년(549년)에 중국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를 가져왔으므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에서 맞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 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楞伽經)〉 〈승만경(勝壇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사리의 전래를 계기로 신라에서 사리신앙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불사리를 봉납하는 사리장치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리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때로부터 1500여년이 지난 1996년 4월 25일, 경주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해체 복원사업 과정 중 3층 옥개석과 옥신석 사이의 사리공(孔)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장엄구가 발견됐다. 겉 상자에 해당하는 사리외함 안에 궁전 모양의 사리내함을 넣고, 그 중심 자리에 사리병을 봉안한 형식의 사리 장엄구였다.
현재 보물 제1359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사리 장엄구는 외함(外函)의 높이가 27cm, 너비가 19cm, 외함 속의 사리기(舍利器) 높이가 16.5cm의 규모로 되어 있다. 사리가 들어 있는 수정병(水晶甁)의 높이는 3.7cm, 입지름은 1.2cm인데, 이 병 안에서 사리 54과(顆)가 발견되었다.
사리외함 외벽 4면에 사천왕상 입상이 판금기법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동쪽 면에 지국천왕, 서쪽 면에 광목천왕, 남쪽 면에 증장천왕, 북쪽 면에 다문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각 사천왕상은 생령좌(生靈座) 위에 서 있는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북방 다문천왕 대좌의 악귀가 양(羊)으로 대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보다 36년 앞서 발견된 서탑 사리외함의 동방 지국천왕상에서도 나타나 있다.
사리외함 속에 들어 있는 내함은 사리병을 직접 안치하는 공간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난간이 둘러쳐진 기단 네 모서리에 대나무 형태의 기둥이 천개(天蓋)를 받치고 있는 구조이다. 대나무를 본뜬 죽절형(竹節形) 기둥은 불국사 다보탑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기둥은 기능성보다는 장식성이 더 강한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내함의 기단부는 불상 대좌처럼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복련과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중단에는 부조(浮彫) 된 신중상과 보살상이 안상(眼像) 안에 배치되어 있다. 신중들은 정면관으로 묘사되어 있고, 보살상은 얼굴의 왼쪽 면이 전체의 7할 정도 보이는 이른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측면관으로 묘사되어 있다. 신중상을 정면관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중이 수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보살상 손을 앞에 모으고 몸을 측면으로 튼 자세로 묘사한 것은 보살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단 장식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네 모서리를 지키고 있는 네 마리 사자와 그들의 입모양이다. 네 마리 사자들은 각기 다른 입모양을 하고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 보통 정도로 벌리고 있는 것, 약간 벌리고 있는 것,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 등 네 가지 형태이다. 이처럼 기단 모서리에 입모양이 다른 네 마리 사자를 배치한 예는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화엄사 원통전앞 사사자석탑 등 같은 시대의 석탑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경우 사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권위와 위엄으로써 사악한 것을 조복시킨다는 사자의 일반적인 의미이고, 또 하나는 네 단계의 입모양 변화를 통하여 법성 진리를 터득하는 과정을 표현함으로써 일체 중생이 자증(自證)과 타화(他化)를 본래부터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단을 보면 네 변을 따라가며 일렬로 장식된 앙련이 있고, 그 안쪽으로 2단의 난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공간 중심에 사리병이 놓여 있다. 이 공간은 내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그 공간의 성격답게 사리병을 중심으로 좌우상하에 화려한 장식이 집중적으로 베풀어져 있다. 사리기를 덮고 있는 지붕 처마 끝에 작은 풍탁(風鐸)과 방울이 촘촘히 매달려 있고, 이와 함께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화불(化佛)과 비천상이 투조되어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락장식을 주렁주렁 매달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상단 표면을 살펴보면, 중심에 사리병이 놓여있고 이 사리병을 가운데 두고 사천왕과 네 명의 스님이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사리병을 등지고 선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 그런데 승상의 경우 지금 상태가 처음 사리장엄구가 만들어질 때 모습 그대로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을 등지고 앞을 주시하고 있는 자세는 그 대상을 경호하거나 외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대상을 향해 두 손을 모우고 있거나 바라보고 서 있는 자세는 경배, 또는 공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화나 불상의 경우를 보면 보살이나 제자들은 항상 부처님을 향해 몸을 틀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자세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시야에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공양인물상의 경우에는 항상 화면 안쪽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자세로 묘사되는데, 이것이 공양상의 도상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 사리공양 의식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리공양상’으로 명명된 이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둥근 돌기둥에 사리를 공양하는 장면을 새겼는데, 좌우 5명의 보살이 중앙의 사리용기를 향해 합장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감은사지 서탑의 사리 장엄구 내함 상단에 주악상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거기서도 모두 사리병을 바라보는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님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며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힘쓰는 수행자이지 사천왕이나 신중처럼 부처님을 경호하거나 불국토를 외호하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 아니다. 평소에도 스님들은 항상 부처님을 향해 서 있거나 앉아 있으며, 부처님께 다가가거나 물러날 때도 결코 부처님께 등을 보이는 법이 없다. 스님들은 부처님께 등을 보이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끝으로 내함의 천개(天蓋)에 대해 살펴보면, 비천상과 화불, 그리고 용이 작고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다. 비천은 불교의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는 천인의 일종이다. 그것은 곧 부처님과 불국토에 대한 공경심과 환희심의 표현이다. 화불에 관해서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깨달음을 얻을 때 대광명을 시방세계에 비추고 모든 털구멍에서 작은 부처(化佛)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화불은 시방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진리의 광명인 것이다. 그리고 용은 부처님 주위에서 부처님을 수호하는 기능을 한다.
사리 장엄구를 장엄하고 있는 일련의 장식물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리고 숭모하고 찬탄하는 불자들의 종교적 열정의 상징이다. 이것이 불국토를 수호하는 사천왕, 신중, 사자, 부처님을 찬탄하는 비천, 공양하는 스님, 그리고 화려한 장식물의 형태로 나타나 있으나, 모든 장식물들은 결국 사리장엄구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리, 곧 부처님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05호/ 2월22일자]
외함.내함 각종 立像 정교한 기법 찬탄
부처님 등진 僧像 복원과정 오류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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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감은사지 동탑 사리장엄구 내함의 전체 모습. |
우리나라에서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진흥왕 10년(549년)에 중국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를 가져왔으므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에서 맞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 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楞伽經)〉 〈승만경(勝壇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사리의 전래를 계기로 신라에서 사리신앙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불사리를 봉납하는 사리장치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리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때로부터 1500여년이 지난 1996년 4월 25일, 경주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해체 복원사업 과정 중 3층 옥개석과 옥신석 사이의 사리공(孔)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장엄구가 발견됐다. 겉 상자에 해당하는 사리외함 안에 궁전 모양의 사리내함을 넣고, 그 중심 자리에 사리병을 봉안한 형식의 사리 장엄구였다.
현재 보물 제1359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사리 장엄구는 외함(外函)의 높이가 27cm, 너비가 19cm, 외함 속의 사리기(舍利器) 높이가 16.5cm의 규모로 되어 있다. 사리가 들어 있는 수정병(水晶甁)의 높이는 3.7cm, 입지름은 1.2cm인데, 이 병 안에서 사리 54과(顆)가 발견되었다.
사리외함 외벽 4면에 사천왕상 입상이 판금기법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동쪽 면에 지국천왕, 서쪽 면에 광목천왕, 남쪽 면에 증장천왕, 북쪽 면에 다문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각 사천왕상은 생령좌(生靈座) 위에 서 있는 일반적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북방 다문천왕 대좌의 악귀가 양(羊)으로 대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보다 36년 앞서 발견된 서탑 사리외함의 동방 지국천왕상에서도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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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사천왕과 스님이 사리병을 등지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
내함의 기단부는 불상 대좌처럼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복련과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중단에는 부조(浮彫) 된 신중상과 보살상이 안상(眼像) 안에 배치되어 있다. 신중들은 정면관으로 묘사되어 있고, 보살상은 얼굴의 왼쪽 면이 전체의 7할 정도 보이는 이른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측면관으로 묘사되어 있다. 신중상을 정면관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중이 수호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보살상 손을 앞에 모으고 몸을 측면으로 튼 자세로 묘사한 것은 보살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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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내함의 기단부. 정면관의 신중상과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공양상이 새겨져 있다. |
하단 장식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네 모서리를 지키고 있는 네 마리 사자와 그들의 입모양이다. 네 마리 사자들은 각기 다른 입모양을 하고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 보통 정도로 벌리고 있는 것, 약간 벌리고 있는 것,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 등 네 가지 형태이다. 이처럼 기단 모서리에 입모양이 다른 네 마리 사자를 배치한 예는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화엄사 원통전앞 사사자석탑 등 같은 시대의 석탑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경우 사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권위와 위엄으로써 사악한 것을 조복시킨다는 사자의 일반적인 의미이고, 또 하나는 네 단계의 입모양 변화를 통하여 법성 진리를 터득하는 과정을 표현함으로써 일체 중생이 자증(自證)과 타화(他化)를 본래부터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상단을 보면 네 변을 따라가며 일렬로 장식된 앙련이 있고, 그 안쪽으로 2단의 난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공간 중심에 사리병이 놓여 있다. 이 공간은 내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그 공간의 성격답게 사리병을 중심으로 좌우상하에 화려한 장식이 집중적으로 베풀어져 있다. 사리기를 덮고 있는 지붕 처마 끝에 작은 풍탁(風鐸)과 방울이 촘촘히 매달려 있고, 이와 함께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화불(化佛)과 비천상이 투조되어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락장식을 주렁주렁 매달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상단 표면을 살펴보면, 중심에 사리병이 놓여있고 이 사리병을 가운데 두고 사천왕과 네 명의 스님이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사리병을 등지고 선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 그런데 승상의 경우 지금 상태가 처음 사리장엄구가 만들어질 때 모습 그대로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을 등지고 앞을 주시하고 있는 자세는 그 대상을 경호하거나 외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대상을 향해 두 손을 모우고 있거나 바라보고 서 있는 자세는 경배, 또는 공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화나 불상의 경우를 보면 보살이나 제자들은 항상 부처님을 향해 몸을 틀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자세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시야에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공양인물상의 경우에는 항상 화면 안쪽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자세로 묘사되는데, 이것이 공양상의 도상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 사리공양 의식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리공양상’으로 명명된 이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둥근 돌기둥에 사리를 공양하는 장면을 새겼는데, 좌우 5명의 보살이 중앙의 사리용기를 향해 합장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감은사지 서탑의 사리 장엄구 내함 상단에 주악상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거기서도 모두 사리병을 바라보는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님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며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힘쓰는 수행자이지 사천왕이나 신중처럼 부처님을 경호하거나 불국토를 외호하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 아니다. 평소에도 스님들은 항상 부처님을 향해 서 있거나 앉아 있으며, 부처님께 다가가거나 물러날 때도 결코 부처님께 등을 보이는 법이 없다. 스님들은 부처님께 등을 보이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끝으로 내함의 천개(天蓋)에 대해 살펴보면, 비천상과 화불, 그리고 용이 작고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다. 비천은 불교의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는 천인의 일종이다. 그것은 곧 부처님과 불국토에 대한 공경심과 환희심의 표현이다. 화불에 관해서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깨달음을 얻을 때 대광명을 시방세계에 비추고 모든 털구멍에서 작은 부처(化佛)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화불은 시방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진리의 광명인 것이다. 그리고 용은 부처님 주위에서 부처님을 수호하는 기능을 한다.
사리 장엄구를 장엄하고 있는 일련의 장식물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리고 숭모하고 찬탄하는 불자들의 종교적 열정의 상징이다. 이것이 불국토를 수호하는 사천왕, 신중, 사자, 부처님을 찬탄하는 비천, 공양하는 스님, 그리고 화려한 장식물의 형태로 나타나 있으나, 모든 장식물들은 결국 사리장엄구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리, 곧 부처님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05호/ 2월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