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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강남용·이진이씨 부부

“한국은 낯설지 않은 나라”

지난 2007년 8월. 강남용(44) 씨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몽골 울란바토르로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간의 휴가에 감사하며 현지 가이드 다시냠 다시마(한국명 이진이, 25) 씨와 함께 시내 투어를 시작했다. 그렇게 강 씨와 다시마 씨의 인연은 시작됐다. 강남용 씨는 투어를 시작한지 3일 째 되는 날 다시마 씨에게 “한국에 함께 가자”고 고백했다. 한국어를 조금 구사할 줄 알았던 다시마 씨는 말도 통하고 잘 웃는 강 씨가 마음에 들었다. 가이드와 관광객으로 만나 불에 콩 구워 먹듯 그해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지난 21일 만난 다시마 씨는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릴 때 기억 때문인지 한국이라는 나라는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몽골 아내는 어릴 때 한국서 2년 생활

태어날 2세는 ‘한국 오바마’ 만들고파



다시마 씨의 어릴 적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3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언니가 있었지만 함께 살 수 있는 형편이 안 돼 잠시 떨어져 살았다. 그곳이 절이었다. 다시마 씨는 몽골에도 고아원처럼 키워주는 절이 있어 몇 년 간 살았다고 이야기 했다. 그때가 예닐곱쯤이라고 떠올렸다. 어릴 적 불심은 자라서도 이어지고 있다.

시집오기 전 한국에서도 산 적이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2년 동안 머물렀다. 다시마 씨는 그 절이 충북 진천군 연구리에 있었다고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사진설명>어릴 적 불심을 갖고 한국에 시집온 다시냠 다시마 씨는 한국에서도 화성 용주사를 찾는다. 지난 22일 다시마 씨가 남편 강남용 씨 시어머니 김시록 씨와 다정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곳에 머물면서 떠올린 추억도 여러 가지다. 머리를 깎은 비구니 스님은 남자인줄 알았는데 자라서 생각해 보니 비구니 스님이었다는 것하며 동네 할아버지들이 귀엽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가끔 자장면을 사줬는데 그 때 먹은 자장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다시마 씨는 신이 나서 술술 풀어냈다.

다시마 씨는 한국에 오자마자 그때 자기를 키워준 비구니 스님을 찾고 싶다며 남편과 함께 진천군 연구리에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절은 없어져 스님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을 기억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잠시나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다시마 씨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다시마 씨가 본격적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며 어려웠던 점은 아침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할 줄 아는 한국음식이 없어 몽골에서 먹던 대로 고기반찬을 내놓곤 했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요리하랴 밥상 차리랴 한국어 공부하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혼 1년차가 다 되가는 지금도 실수가 많다.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은 김치 냄새가 큰 고역이었다. 요즘이야 김치찌개도 끓일 줄 알고 먹기도 잘 먹지만 처음에는 김치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떨어질 정도였다. 강 씨는 “이제는 다행히 김치도 잘 먹고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워 요리도 곧잘 한다”면서 부인을 자랑했다. 다시마 씨는 “어려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가족이 생겨 너무 좋다”면서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어 공부도 난제였다. 그중에서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몽골어에는 높임말이 없기 때문이다. 강 씨는 높임말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높임말에 서툰 부인이 ‘니네 들은 여기서 기다려. 나는 간다’라고 본인과 시어머니를 향해 말해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그랬던 다시마 씨지만 최근 응시한 한국어능력시험 3급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부부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다. 강 씨는 부인의 의견을 존중해 2~3년 간은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 자녀로서의 교육에 대한 준비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부부의 방침은 각자 문화를 골고루 가르쳐 앞으로 태어날 자녀를 ‘제2의 오바마’로 키우는 것이다. 그들의 꿈이기도 하다.

“다민종 다국가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열심히 공부해야 겠죠. 미쳐 끝내지 못한 공부도 한국에서 마치고 싶습니다.” 다시마 씨의 소박한 소원이다.

화성=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 2527호/ 5월2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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