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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동안 꽃비 내리는 부처님 도량
7, 8, 9월 3개월 동안 붉은 꽃이 피어 목백일홍이라 불리는 배롱나무. 화순 만연사 대웅전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배롱나무는 한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꽃망울에서 한 꽃이 지면 다음 꽃이 피고 하는 식으로 백일동안 핀다.

전남 화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이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유명세를 타는 곳이 있는데 바로 만연사다. 만연사 대웅전 옆에는 큰 배롱나무가 있는데 지금 아름다운 붉은 꽃이 만개해 인터넷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해 백일홍나무라 불리다가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됐다고 한다. 화초의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해 목백일홍이라도 불린다.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배롱나무 꽃을 보기 위해 지난 12일 새벽에 길을 나섰다. 

관심이 없어도 듣게 되는 차량화재 소식에 장거리 운전이라 조금은 시원한 새벽길을 선택한 것 또 다른 이유이다. 어두운 새벽을 달리자 짙푸른 여명이 열렸다. 이후 눈부신 태양이 강렬한 붉은 기운을 선사한다. 

오전8시, 비스듬히 누운 아침햇살이 조용히 산사를 비추고 있었다. ‘나한산만연사(羅漢山萬淵寺)’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제일 먼저 만났다. 나한산은 만연산의 옛 이름이다. 만연사는 1208년(고려 희종4년) 만연(萬淵)선사가 창건했다. 만연선사는 광주 무등산에서 수도를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곳 나한산 자락에 잠시 쉬다 잠이 들었는데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불사를 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눈이 많이 내려 쌓여 있었으나 자신이 누워 있던 자리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행을 하면서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나한산에서 만연산으로 이름이 바뀐 듯 하다. 

당간지주 옆 화분에 배롱나무 꽃잎이 떨어져 있다.

경내로 들어서니 ‘천우화(天雨華)’ 현판이 걸린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라는 뜻이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했을 때 같이 상서로운 일이 있을 때 ‘꽃비’가 등장한다. 그 상서로운 순간을 기념해 ‘우화루(雨花樓)’라는 전각이 많이 있다. 완주 송광사, 의성 고운사를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사찰에서 우화루를 찾을 수 있다. 만연사의 천우화 또한 같은 의미의 전각이다. ‘천우화’ 뒤에 누(樓)나 각(閣)을 붙이지 않으니 공간 자체가 더욱 넓게 퍼지는 느낌이다. 천우화 옆에 이어진 석축에는 마치 꽃비 내리듯 능소화가 피어있다. 

천우화을 통과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바로 오른편에 거대한 선홍색 꽃망울을 맘껏 터트리고 있는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위쪽에는 선홍색 배롱나무 꽃이 피어 있고 나무 아래쪽에는 붉은 연등이 매달려 있다. 사실 배롱나무는 우리나라에 조경수로 많이 심어져 있다. 고찰이나 서원 같은 곳에 운치 있게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많다. 하지만 이 곳처럼 ‘나 주인공이야’ 하며 뽐내며 서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바쁘게 대웅전에 인사를 올리고 나와 나무를 감상하니 빛이 나는 매끄러운 줄기 또한 아름답다. 

천우화. 인터넷에서 화우천이라고 불리고 있는 누각이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뜨거운 여름 동안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배롱나무는 겉으론 너무 화려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붉은 꽃은 열흘을 가지 않는다는 뜻인데 배롱나무꽃은 백일을 가니 화무십일홍은 틀린 말일까? 조선시대 사육신인 성산문이 지은 백일홍 시를 살펴보자.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어제 저녁 꽃 한 송이 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對爾好含杯(대이호함배) 내 너를 대하며 좋이 한잔 하리라….’ 백일홍은 한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은 꽃망울이 생겨서 꽃이 하나 떨어지면 다른 꽃이 피고 이렇게 피고 지기를 반복 하며 백일을 간다. 또한 지금은 원숭이도 못 올라갈 정도로 매끄러운 줄기를 보이고 있지만 앙상하게 겨울을 보낸 후에 매년 봄이면 고통스럽게 껍질을 벗는다. 

화순군이 조성한 만연산 치유의 숲에는 매년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배롱나무는 스님들과 닮아 있다. 허물을 벗는 수행을 견뎌야만 깨달음의 꽃을 오랫동안 피운다. 또한 넓은 그늘을 중생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찰에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일까. 

혼자만 감상하고자 하는 욕심 과한 탓인지 조용한 아침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내 배롱나무를 촬영하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한다.

만연사 바로 뒤쪽으로는 화순군에서 사업비 118억원을 들여 120ha 규모로 준공하고 지난해 개장한 치유의 숲이 있다. 전라도에서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 광주광역시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어서 인기가 많다. 지난해 7월 임시개장 이후 올 6월까지만 31만여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입구에는 치유의 숲 센터가 있는데 혈압, 체지방 그리고 스트레스 측정기가 있다. 스트레스 측정을 해보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 높게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숲을 찾는 이유다. 굳이 피톤치드 음이온 등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숲에 들어가면 상쾌함이 느껴진다. 치유의 숲은 만연산 정상까지 이어지며 다양한 코스가 준비 되어 있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오감연결길은 3.1km이다. 

길을 걷는 동안 간간히 눈에 띠는 배롱나무가 반갑다. 늘 곁에 있었지만 이제야 친구가 된 듯,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청량한 숲 공기는 덤이다. 

우연히 담양의 한 농가에서 반가운 제비집을 발견했다. 운좋게 새끼에게 먹이주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불교신문3417호/2018년8월22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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