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과사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 익산 미륵사지
백송김실근
2022. 7. 29. 08:00
백제 무왕의 슬픔, 그대는 아는가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과정에서 부처님의 사리와 사리를 봉안한 3중(三重)의 금제 사리병 등 다양한 공양구들이 발견됐다. 이 금제사리병 안에서는 또 작은 금제사리병이, 그 속에는 유리병과 부처님의 사리가 발견되어 많은 이들의 환희심을 불러 일으켰다.
경전과 미륵사 사리봉영기를 보면 사찰을 짓고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는 모든 불사가 곧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게 하는 미륵부처님의
대비(大悲)의 마음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하루는 왕이 부인과 더불어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다.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자 수레를 멈추고 예경을 하였다.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소원’이라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에게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이에 부처님 모습을 조성하고 미륵삼회(彌勒三會)에 따라 전각과 불탑, 회랑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기록은 너무나 정확하여 놀랍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행차했다는 용화산의 ‘사자사’가 지금도 남아 있고, 못을 메운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 삼원(三院)의 조영도 그러하다. 미륵사지 토층 조사결과 중원, 서원, 동원 순으로 무왕의 재위 전 기간(600641)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익산 미륵사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 모형도.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백제의 모습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닐까.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다
중원은 선화왕후(공주)의 발원에 따라 큰 목탑과 금당을 조성하고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셨을 것이다. 그리고 <법화경> ‘견보탑품’에 따라 서원은 9층 석탑을 조성하고 무왕의 후비(後妃)인 사택왕후가 639년 사리를 봉안하고, 금당에는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셨을 것이다. 동원은 사택씨를 비롯한 지역의 귀족들이 9층 석탑을 조성하고 과거불인 다보여래를 금당에 봉안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미륵사 삼탑삼금당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백제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백제 639년).
미륵사지 서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으로 목탑을 바라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목조건축물의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였다. 전쟁을 많이 겪은 우리 민족은 부처님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석탑을 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탑 속에 신앙심과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 그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리 장엄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2009년 1월 서탑 해체과정에서 심주(心柱) 중앙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 장엄구는 부처님의 사리와 사리를 봉안한 3중(三重)의 금제 사리병, 금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 사리를 위해 공양된 다양한 공양구들로 불자들은 감동했고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에 놀라워했다. 금제사리병 안에는 또 작은 금제사리병이, 그 속에는 유리병과 부처님의 사리가 발견되어 벅찬 감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당시 필자도 부처님의 사리를 친견하고 108배를 올려 예경을 하였다.

경전 내용에 따라 부처님 사리 봉안
이러한 삼중 사리장엄은 <불설장아함경>과 <불설관정경>에 근거해 조성했다. 부처님께서 “아난아, 네가 나를 장사지내려 하거든 먼저 향탕(香湯)으로 목욕시키고, 새 무명천으로 몸을 두루 감되 500겹으로 감싸고, 몸을 황금관에 넣은 뒤에는 깨 기름을 거기에 부어라. 다음에는 황금관을 들어 두 번째 큰 쇠곽에 넣고, 전단향나무 덧관으로 겉을 거듭 싼다. 그 다음 온갖 향을 쌓아 그 위를 덮고, 화장(火葬)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법화경> ‘서품’에서는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에 드시자 문수사리보살이 “몸은 황금산 같고 단정하고 미묘하시어 깨끗한 유리병 속에 참다운 모습 나투신 듯하다”고 해서 부처님의 사리를 유리병 속에 모셨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명천은 사리를 담는 유리병에 해당된다. 황금관은 사리 내함, 철관(鐵棺)은 사리 외함, 목관이 최종 석곽인 심주 사리공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경전의 내용에 따라 정확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지극한 공경심을 나타냈다. 또한 그 앞 시대와는 달리 세존의 사리를 1층 심주 중앙에 사리를 모시고 사방으로 석문을 달아 사리의 봉안처를 개방하여 대중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직접 참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또한 <대반열반경> ‘후분’에 “탑의 네 방면마다 열 수 있는 하나의 문을 달고 층층의 사이사이에 창문과 바라지창을 알맞게 내고, 보배병에 담은 여래의 사리를 안치하여 하늘 사람과 사부대중이 우러르고 공양 올리게 하라”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토제나발 은제손톱도 …
특히 기단부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토제나발(土製螺髮)과 은제손톱을 봉안하여 부처님 생전의 머리카락과 손톱의 의미를 부여하여 늘 부처님과 함께 한다는 자긍심을 나타냈다. 이는 “부처님 성도 후 첫 공양을 올린 땁뿟사와 발리까 두 상인이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부처님으로부터 받아 발조탑(髮爪塔)이 세워졌다”는 <불본행집경>에 기인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첩된 보주무늬가 새겨진 금제 족집게는 깨알보다 작은 불사리 1과를 유리병에 담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부처님의 사리는 중생의 손으로 집을 수 없다는 경외심(敬畏心)을 보여주고 있다.

서탑에 봉안됐던 불사리 1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영기. 서탑 해체과정에서 심주(心柱) 중앙 사리공에서 사리 장엄구 등과 함께 발견됐다.
또한 석제 사리공 바닥에 녹색 유리판을 깔고 그 위에 사리호를 올려놓았다. <대방등대집경>에 “저희들은 이제 모두 어느 곳에서나 서로 힘써서 감당하는 동시에 부지런히 갖가지로 부처님을 공양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며, 또 “이 사천하에 있는 땅의 경계는 푸른 유리색의 땅으로 변화하게 하여 공양하였다”고 했다. 미륵사지 서탑에 공양을 올린 사택왕후는 백제 땅을 청정한 국토로 장엄하여 부처님에게 공양한다는 의미로 녹색 유리판을 깔았을 것이다. 또 사택왕후는 사리봉영기에서 “기해년(639) 정월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세토록 (사리를) 공양함이 겁겁(劫劫)동안 다하지 않게 하여, 이 선근으로써 대왕폐하께서는 수명이 산악과 같이 견고하여지고 치세는 천지와 같이 오래도록 길며, 위로는 정법을 널리 펴시고 아래로는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게 하소서”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였다. 사찰을 짓고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는 모든 불사가 곧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게 하는 미륵부처님의 대비(大悲)의 마음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불자들이 모신 사찰의 원불(願佛)이 일체중생의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거룩한 불사임을 생각한다면 주저할 일이 아니다. 이렇듯 백제 무왕이 익산에 거대한 사찰을 지은 목적은 무왕 자신이 어릴 때 살아왔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서동으로서 선화공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백성을 안락하게 하는 전륜성왕이 되어 더욱 부처님께 귀의하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용화산과 동서 9층 석탑 전경.
[불교신문 3724호/2022년7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