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과사찰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엄마하고 부르고 싶은 절! 봉정사 그리고 영산암

백송김실근 2022. 2. 26. 08:00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찾았던 까닭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가을걷이도 끝난 늦가을 무언가 그리울 땐 ‘엄마~’하고 부르고 싶은 절 안동 봉정사와 영산암에 가보자. 느릿느릿 양반걸음으로 걸으면 덕휘루를 감싼 소나무와 문지방의 휘어짐도 멋있고,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담벼락 등 시골집을 찾는 기분이다. 

지금은 만세루라 부르는 덕휘루 누각에는 ‘天燈山鳳停寺(천등산봉정사)’란 편액이 걸려 있다. 설화에 “능인대덕이 대망산 굴속에서 수행할 때 천녀가 하늘의 등불을 내려주었으므로 ‘천등산’, 그 굴을 ‘천등굴’이라 했다. 그 뒤 능인대덕이 종이 봉황을 날려 내려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설화에 역사적, 사실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구체화 시키면 더욱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봉정사 인근이 고향인 퇴계 이황은 봉정사 시에서 “부처가 천등을 내렸다니 참으로 헛것(佛降天燈眞是幻)”이라 했고, 이유장은 “부처가 내린 이 산을 천등이라 불렀네(佛降茲山號是燈)”라고 했다. 이처럼 유학자도 ‘천등’을 부처님이 내린 등불로 보았다. 
 

 

➲ 의상이 화엄경 펼친 곳 

더욱이 봉정사는 의상법사의 십대제자 능인대덕이 창건한 사찰이고, <화엄경>은 의상법사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포시킨 경전이다. <삼국유사>에 “법사 의상은 650년 당나라 종남산 지상사 지엄화상을 찾아갔다. 지엄의 전날 꿈에 큰 오동나무가 바다 동쪽에서 솟아나 온 땅을 덮었다. 나뭇가지 위 봉황의 둥지에 마니보주가 밝은 빛을 멀리 비추고 있었다. 깨어나서 놀랍고 경이로워 깨끗이 치우고 기다렸더니 곧 의상이 이르렀다”고 했다. 지엄은 의상을 <화엄경>을 펼칠 최고의 새 봉황으로 보았다. 의상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봉황이 머물렀던 절 ‘봉정사’라 했을 것이다.

봉황은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성인은 부처님으로 <화엄경>을, 봉황은 <화엄경>을 펼칠 의상이라고 해석되어야 ‘덕휘루(德輝樓)’란 누각의 뜻이 분명하다. 덕휘는 바로 ‘거룩한 덕의 광채(盛德之輝光)’인데, ‘백성들이 모두 받들어 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덕휘는 한나라 가의가 <조 굴원부>에서, “봉황은 천 길 높이 날다가, 성인의 빛나는 덕을 보고 내려간다(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고 했다. 봉황인 의상이 부처님의 빛나는 덕인 <화엄경>을 펼친 곳이란 의미로 봉정사와 덕휘루의 이름이 딱 맞아 떨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팔작지붕의 봉정사 대웅전. 자연미가 넘치는 기단 또한 고풍스럽다.

➲ 대웅전 분합문 올리면 화엄강당 

있는 듯 없는 듯 낡은 대문과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군더더기 없는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자연미가 넘치는 기단이 고풍스럽게 펼쳐진다. 장명등이나 불탑도 없어 시원스레 금당을 마주한다. 띠살 무늬 사분합문과 난간을 두른 툇마루도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대웅전 분합문을 들쇠로 들어 올리면 대웅전의 공간이 툇마루, 앞마당, 덕휘루까지 넓어진다. 부처님과 중생이 하나로 뒤섞이는 영산회상이 펼쳐지면 무수한 불보살과 천신, 성문, 연각, 대중이 거룩한 덕의 광채에 이끌려 화엄강당, 무량해회(無量海會)에 운집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1999년 4월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곳 봉정사를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왜 하필 시골의 작은 사찰 봉정사였을까?

사람의 육체는 수많은 생을 두고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생각 즉, ‘말나식’은 ‘아뢰야식’이라는 무의식 공간에 저장된다. 1300여 년 전 어느 봄날인가 봉정사 낙성식에 가고 싶었던 신라 공주가 있었다.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이곳을 꼭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말나식이 되어 마음 속 깊은 아뢰야식에 저장되었다. 공주는 윤회를 거듭하여 영국 여왕이 되었다. 여왕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미완의 생각, 말라식이 인(因)이 되어 한국 방문이라는 연(緣)을 만나자 가고 싶었던 봉정사를 온 것은 아닐까?

이러한 것을 ‘인연’이라 한다. 마치 연꽃의 씨가 오랫동안 마른 진흙 속에 묻혀있었지만 비를 만나면 다시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여왕은 덕휘루에 올라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고 했다. 얼마나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봉정사의 봄날인가. 1300여 년 전의 봄 향기가 오늘에서야 봉정사의 봄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극락전 안의 아미타불은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 내면의 순수함…국내 最古 목조 건축

동쪽의 대웅전이 화엄을 밝게 들어 내보여 믿음을 주는 공간이라면 서쪽의 극락전은 믿음을 갈고 닦는 기도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극락전의 맞배지붕, 주심포 기둥, 공포와 문과 창문이 간결하고 수수함을 보여준다.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과 바닥의 전돌도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듯 정갈하다. 독존의 아미타불은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다.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오직 내면을 향하는 순수함을 보여주고 있어 편안하다. 

봉정사와 팔 하나 사이에 둔 영산암이 있다. 하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영산암에 가려면 ‘V’자형 계곡을 가파르게 내려가서 다시 계단을 오르는 암자의 정취가 느껴지는 멋이 있었다. 쉽게 갈 수 있는 지금은 어쩐지 아쉬움이 남아 영산암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킨 것 같다. 영산암의 아름다운 ‘ㅁ’자형 공간 중앙에는 낮게 자란 소나무와 꽃동산으로 꾸민 정원이 예쁘다. 남쪽 우화루의 ‘우화(雨花)’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는 비가 초목을 적셔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고 두루 자라게 하여 모두 윤택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한 맛의 비로 사람과 꽃을 윤택하게 한다”고 했다. 휘어진 문지방과 대문, 검은 판벽, 백색의 회벽, 텅 빈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여염집 2층 다락처럼 수수하다. 북쪽 높은 기단위의 응진전에는 수기삼존불과 16아라한을 모셨는데 주변 건물보다 높게 해 위계를 달리했다. 내부 벽화엔 봉황이 오동나무 아래 있고 ‘봉명조양(鳳鳴朝陽)’이란 글씨가 있어 봉정사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예쁜 정원이 일품인 영산암.

➲ 텅빈 충만…올망졸망 다양성 존중 

대웅전, 극락전, 영산암은 각기 다른 개성적 공간을 보여주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불교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코딱지만 한’ 공간에서 찾는 ‘텅 빈 충만’은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깨달음의 표현이 아닐까? 올망졸망 서로 어깨를 맞댄 전각들은 보노라면 어린 시절 한 이불 덮고 자란 가족들이 생각나는 곳이다. 

[불교신문3693호/2021년11월30일자]